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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을 읽고)


 어렸을 때에는 몰랐었다.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서 떠올린 이미지는 삼각 플라스크와 비커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부스스한 머리와 동그란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과학은 물,화,생,지가 되었고, 어떤 과목이

 점수를 받기 쉬운가에 따라서 그 과목에 대한 이미지도 바뀌어 나갔다. 지금도 완전히 성장했다고는 말할 수 없고, 심지어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지만, 일단 나는 공학 계열로 진학을 하였고, 나에게 과학은 어떤 분야가 취업이 잘 되는지에 따라서 또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순수 과학은 어렵고 고단한 길이야.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지. 나는 그럴 위인이 되질 못해

 저기 저 똑똑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신기한 결과를 보여주면 나는 그저 아는 척이나 하면서 정말 놀라워~ 라는 가식만 조금 해 주면 되는 거지!! 내가 나를 보아도 한심하다. 과학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과학이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장소 중 하나를 우리는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저자는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의 관장이다. 사실 나에게 박물관은 그렇게 흥미를 끄는 곳이 아니었다. 박물관에서 전시해 놓은 돌들은 길가에서 수없이 봐왔던 그것들과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이 박물관이라 하면 떠올리는 공룡 화석도 그 크기에 놀라워했던 것이지, 나에게는 그저 커다란 치킨 뼈와 같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은 나를 유혹하는 것에 실패하였을지 모르지만, 박물관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기능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본디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쌓이는 수많은 표본들과 유물들(편의상 이렇게 지칭하겠다.)을 쌓아두기만 할 수가 없었고, 관리도 필료한 겸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공공재의 기능을 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것이 바로 박물관이다. 그래서 좋은 박물관이라 함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같이 어마어마한 양과 희귀한 자료들만 가져다 이쁘게 전시해 놓는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를 싫어한다. 아주 단순하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 재미 없어하는 종류의 일이라도 열심히 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하기 위해서 그 발화점이 되는 경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불붙는 사람들이다. 


 책에서는 수많은 주제들을 다룬다. 자본주의가 붕괴한다던지, 지난 대통령의 만행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본인의 독일 유학 시절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말이다. 물론 저자의 주관적 견해가 없잖아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책이 팔리기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이 책에서 이렇게 끄적여 놓았던데, 이게 정말일까? 찾아보게 된다. 탐구하게 된다. 어느새 과학을 하고 있게 된다. 


 카페에 앉아 달콤쌉싸름한 녹차 라떼를 마시고 있자면 낙동강의 녹조 현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우리가 녹조라떼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들도 돈이 필요했나보다. 돈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권력을 쥐고 있었고, 과학을 조작할 힘마저도 가졌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깊이 파고들어가다보면 끝이 없겠지만, 과학자들이 자신의 신념과 객관적 사실을 세상에 보다 널리 이야기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잠도 못자면서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이 물론 멋있긴 하다. 그런데, 그런 순수한 과학자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연구를 진행하려면 더 큰 돈이 필요하다. 과학자를 밀어주는 돈의 출처에 따라서 그 연구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녹조라떼와 같이 우리 삶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만 하기에도 물론 바쁠 수 있다. 그렇지만 과학자는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밝힐 의무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용감한 과학자를 후원해줄 의무가 있다. 


 사실 나는 TV에 자주 출현하는 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명성을 얻고 돈을 얻으려는 속물과 같이 보았었다. 이 책의 저자도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알고 있기에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 부정적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가보다. 책 한권 읽었다고 마음이 격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중을 위해 과학적 관점에서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가? 공부와 연구를 직업으로 삼고, 실패하는 것이 당연한 직업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세요. 이렇게 말하는 책이 아니다. 지금 내가 왜 있을까? 우주가 탄생했고,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났다. 지능을 가진 포유류가 지구를 뒤덮기 시작하였다. 그 중 하나가 나이다. 그럼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의 문제는 무엇일까?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까? 과학에서 조언을 구해보자. 스스로. 슬기슬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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