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 달콤한 이야기들은 비단 책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의 형태로 변형되어 어느덧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게 되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그들을 닮은 자식들을 키워 그들과 같이 성장시킨 뒤 다시 사회로 내보내는 이 끝없는 굴레, 이 지극히 단순한 과정에서 사랑은 어쩌면 큰 부분이 아닐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사랑이라는 것은 상당히 포괄적인 개념이다. 가장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어떠한 물건에 대한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 수식어는 수도 없이 많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이들은 모두 '사랑'이다. 그리고 우리는 끝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의 결말은 행복한 모습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거나, 조금 더 나아가면 그들 사이에 생긴 2세를 지긋이 바라보며 행복해 하는 것이다. 그 이후는 과연 어떨까? 그들이 그 2세를 키우는 과정을 어떨까? 두 사람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이런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은 낭만적 연애, '그 후의' 것이다. 그렇다. 이 두 요소가 모두 어우러진 상황이 비로소 이 책에 대한 작은 이해가 된다. 책에 대한 설명을 읽기에 앞서 나는 우선 책의 표지도 찬찬히 둘러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건축사이자 중동 출신의 이민자 부모에게서 자란 라비가 있다. 마찬가지로 설계사이자 스코틀랜드 토박이이지만 홀연히 떠나버린 아버지 덕분에 어머니의 손길을 받고 자란 커스틴이 있다. 이들은 이야기를 하고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마침내 '이 사람이라면…….' 이라는 구절이 싹트고, 마침내 서로가 서로에게 '이 사람이' 된다. 아니, 되어버린다고 해야 하나.
에스터라는 아이가 태어나고, 커스틴은 전업에 집중한다. 이제부터 그들의 역할은 다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분명 그들은 서로의 공통점에 동질감을 느꼈었고, 호감이 생긴 이유에도 그것이 한 몫을 하였지만, 이 시점에서부터 그들은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공통점을 제거하고 조금 틀어진 선로와 같이 계속해서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들도 아이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저 나이 많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부부는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아이에게는 상냥한 언어가 필요하다. 아이는 때로 아무 이유 없이 토라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기보다 쉽게 화를 풀곤 한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아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마냥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라비는 커스틴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커스틴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들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지만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서로 사랑한다. 오히려 아내가 아닌 여자와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에는 그 사실이 무서우리만큼 진실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은 자식들은 사랑한다. 한밤중에 인형을 들고 와서 잠을 깨워도, 빠듯한 살림에 무선 헬리콥터를 사달라고 해도, 힘들 게 계획한 가족 여행에 투정을 부려도, 그들은 자식들을 사랑한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뭉쳐진 사랑의 공동체, 매일을 시작하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크고 작은 아이들. 세상 모든 것들은 안정을 찾으려 한다지만 안정이 곧 그 끝일 수도 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그러하다.
어쩌면 나는 낭만적 연애, 아니 어쩌면 그냥 연애의 그 시점까지밖엔 도달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낭만적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노력만으론 부족할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이 충분히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척도가 없어 확신하지 못할 뿐, 누군가 사랑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면, 그의 목적은 단순히 생식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을까?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즐거워한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만족할까? 수없이 많은 질문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며 이 글귀를 기억에 새겨본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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