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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당장 가진 돈을 가지고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를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대다수는 나를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지나칠 것이고,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그저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왔기에 그러할 것이다. 세상은 따듯하다, 현대 사회에도 아직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 몇 푼을 쥐어주고 밖에서 지내보라고 한다면 어떠할까?



 

주인공 홀든은 성장기를 지나고 있는 열여섯의 고등학생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나 명문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었지만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에서 낙제를 받고 퇴학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세 번이나 퇴학통보를 맞은 그에게 별 감흥은 없다.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버린 그는 남을 돈과 시간을 가지고 흘러가듯 뉴욕에서 시간을 죽인다. 그가 과연 동생과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아니 기다리지는 않고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당연하게도 그는 돌아다니는 동안 학교에서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친구의 어머니, 과격하지만 격려해 주는 선생님, 모금을 하러 다니는 수녀들, 술집에서 만난 노처녀들과 영화배우, 호텔에서 보았던 변태성욕자들과 창녀, 강도짓을 한 엘리베이터 보이, 그에게 연민을 품는 과거 선생까지. 그가 바라본 며칠의 세상은 비록 뉴욕의 일부였지만, 세상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가는 발길마다 상스러운 낙서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날씨도 날씨거니와 사람들의 마음은 얼어붙은 듯하다. 그들이 재미있어하고 감동을 받는 연극과, 피아노 소리에서는 자만과 억지가 묻어나고, 또래 여자들은 입에 발린 소리에 홀딱 넘어가 오늘도 몸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계속해서 보고 듣는 모든 것마다 자신만의 특유의 부정적 시선을 내비친다. , 몇 가지를 제외하고. 그의 여동생 P.B.와 죽었지만 한 번도 그를 화나게 하지 않았던 남동생 앨리, 그리고 모금을 하던 수녀들과 첫사랑 제인, 결국 홀든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렇게 많았고, 생각보다는 비관적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절벽을 뒤로 한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떨어지는 것을 받아 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 부유한 변호사인 아버지와 할리우드로 진출한 성공한 극작가를 아들로 둔 어머니가 그를 본다면 어쩌면 한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들은 좋은 대학과 사교육까지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자식이 갑자기 시인이 되어 등단을 하겠다고 하거나, 음악을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 작업에 몰두하겠다고 하였을 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혹은 우리의 자식들이 그런 말을 꺼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자식이 파수꾼이 되겠다고 하면 극구 말리지 않을까. 홀든이 보았던 차가운 세상이 진실 된 것일지, 혹은 동생 P.B.가 회전목마를 타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던 그것이 세상의 진면목일지, 알 수는 없을 테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추운 밤 뉴욕 거리를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거닐었던 홀든이 죽은 동생을 불렀듯이, 나도 이상의 그 무언가를 부르며 살아갈 것이다.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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