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두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을 품고 산다. 그것을 좀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뜨거움과 타인의 그것이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끈끈한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한 개인도, 단체도 아닌 한 마을 전체가 같은 뜨거움을 지니고 사는 마을이 있다. 책의 제목이자, 무자비한 숲의 추위를 자랑하는 하키 타운. 스스로를 곰이라 여기는 순수하고 하키밖엔 모르는 사람들이 오늘도 퍽을 힘껏 내리치고 열광하는 이곳, 베어타운이다.
이 추운 마을이 번영하였을 시절을 이야기한다면, 상당한 세월을 겪은 인물일 것이다. 더불어 이 마을의 번영을 다시금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상당한 세월을 겪어야 할 인물일 것이다. 이 마을은 그런 곳이다. 하키 실력에 따라서 학교에서의 서열이 정해진다. 하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스링크 장은 한 자리를 제외하고 모두 매진이 된다. 지역 하키단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는 날이면 선수들의 버스를 따라서 모두가 줄지어 떠나간다. 아이들의 머리맡에는 프로 하키 선수의 포스터가 걸려 있고, 새벽은 하키 퍽을 치는 소리로 시작한다. 하키단이 우승을 하게 된다면, 베어타운에는 하키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슈퍼마켓이 생기고, 낡아버린 마을의 표지판이 바뀌게 될 것이다. 선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선수들은 미친 듯이 연습을 하고, 사람들은 응원한다.
단장 페테르는 베어타운 출신의 하키 선수이다. 프로 리그까지 진출을 하지만 최정상을 한 발 남겨둔 채로 추락하게 되었다. 프로시절 결혼한 변호사 아내를 설득하여 이 시골 마을에 들어와 두 아이(마야와 레오)를 키우고 있다.
케빈은 베어타운의 하키 선수이다. 팀의 에이스이자, 부유한 부모님의 탄탄한 뒷심으로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연습한다. 하지만 엄격한 부모의 교욱 하에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해 가고 있다. 그의 부모는 하키 경기를 보러 오지 않는다. 하키에 이겼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그가 몇 골을 넣었는지 물어본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를 자축하는 시간이면 그는 가정부에게 뒷돈을 주고 집에서 파티를 연다. 그 시간만큼은 마음껏 술을 마셔도 되고, 대마초를 피워도, 파티에 온 여자 아이를 이끌고 2층으로 올라가도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준결승전 파티에서 바뀌게 된다.
진한 화장을 하고 블라우스와 코트를 입고 파티 장으로 간다. 이를 지켜보던 케빈은 그녀에게 다가간다. 술 게임이 계속되고, 해맑은 웃음들이 오고 간다. 하지만 선수들은 알고 있다. 그녀가 단장 페테르의 하나 뿐인 딸 마야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기타를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고, 아빠를 사랑하는 마야를. 그래서 그들은 케빈에게 내기를 한다. 케빈이 그녀와 함께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지 내기를 한다. 5천 크로나를 건다.
마야는 저항한다. 케빈을 할퀴고 목을 때린다. 하지만 하키단의 에이스를 이길 수는 없다. 그녀는 멍이 들고 옷이 찢긴다.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는 하지만 파티의 괘활함에 묻히고 그녀는 전혀 쾌활하지 않다. 그녀는 도망을 친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을 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옷을 태우고 침대에 박혀버린다. 하키단의 핵심인 케빈이 하키단의 핵심인 단장의 딸을 강간했다.
이 마을은 베어타운이다. 이 마을은 하키타운이다.
저자의 전작인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다. 작은 시골에서 살아가는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기에, 책의 겉표지와 아기자기한 작품의 이름만 보고 이번 작품도 그러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문장, '3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십대 청소년이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성폭행, 마녀 사냥, 군중 심리와 같은 현대 사회의 뜨거운 감자들을 도마 위에 올리기 위해서 일부로 칼날을 날카롭게 한 장치가 아니었다 싶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짧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다. 우리 삶과 같이 그들은 단순히 주인공을 위해서 존재하는 요소가 아니다. 비록 주인공에게는 악역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이고, 사랑스런 부모님의 자식이고, 누구보다 하키를 사랑하는 미련한 곰이다. 그렇기에 마냥 미워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배경을 설명하고, 인물들은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마치 우리와 같이.
시간을 정지시키고 나를 둘러싼 관계들을 응시해 본다. 책을 덮고 나니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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