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이다. 그리고 엉망진창이다. 20-30대 청춘들에게 있어서 초유의 관심사는 역시 사랑, 그리고 '연애' 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일들이 모두 그러하듯 항상 예상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운명의 신이 장난질을 치는 것인지,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서는 원하는 바의 반대로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애피소드들이 모여 책을 이룬다면 정말 흥미롭지 않을까?
슬슬 겨울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책의 표지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에피소드의 배경은 겨울의 설산, 그것도 온천 스키장이다. 이곳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말이 있다. 두꺼운 점퍼와 고글을 쓰고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보드를 즐기는 남녀는 당연히 서로에게 연민을 품게 되지 않을까. 더불어 따뜻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는 숙소, 온천 스키장은 사랑에 빠진 둘 사이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프로로즈를 준비한 남자는 여자의 과거 약혼 남에게 눈앞에서 그녀를 빼앗겨 버리고, 양다리를 걸친 남자는 내연녀와 함께 온 여행에서 약혼녀와 마주치게 된다. 남몰래 흠모했던 사람이 사실 절친한 동료와 결혼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리고, 스키장에서 주최하는 소개팅에 참가해서 뜻밖에 인연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얼핏 들어서는 나와 상관없는 드라마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때때로 우리를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혹은 했던 그 시점을 생각해 보자. 연인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고, 연인의 어떠한 모습이라도 사랑스럽고 마음에 든다. 연인과 잠시라도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어지고, 함께 있던 장소를 지나칠 때면 생각이 나고, 함께 먹었던 음식을 보기만 해도 그리워진다. 사랑이라는 것에는 이러한 힘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올해도 온천 스키장을 찾는다.
이 책의 서평들을 보았다.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유명한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명 '설산'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라나……. 하지만 나는 그의 전작과 무관하게 책의 배경 '스키장'에 집중하고 싶었다. 장소의 이름만 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고, 함께 하는 즐거움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장소,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이 쌓인 슬로프를 내려오면서 두꺼운 부츠 아래로 부드럽게 그의 질감을 느끼고만 싶다. 눈 뭉텅이 속으로 포근하게 넘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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